공석민 Seokmin KONG

 

12662526_927864923993248_6393626870374559313_n

기고자의 2016년 첫 전시 공석민 개인전 <무빙워크 Moving Walk>에 초대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간의 삶을 형성하는 제반조건을 목도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한 단상과 질문을 다룬 공석민 작가의 영상 작품 두 점을 선보입니다.

전시제목: 공석민 개인전 <무빙 워크 Moving Walk>
전시기간: 2016. 1. 15. – 2016. 1. 30.
운영시간: 14:00-20:00 (전시기간 중 매일 운영)
주소: 서울시 마포구 대흥동 3-42번지 2층
*별도의 오프닝 행사가 없습니다. 관람을 원하시는 분은 운영시간 중 편하게 방문해주세요.

Independent Arts Space Initiative KIGOJA is pleased to announce the first show of this year, Moving Walk by the artist Seokmin Kong.

– Title: Seokmin Kong <Moving Walk>
– Period: 2016. 1. 15. – 2016. 2. 5.
– Opening Hours: 14:00-20:00 (Opens on everyday during exhibition period)
– Venue: KIGOJA (2F, 3-42, Daeheung-dong, Mapo-gu, Seoul)
*No opening reception. Please feel free to visit the exhibition venue during opening hours of the show.

00549605201_20160126

Image courtesy of the artist

공석민 개인전 < 무빙 워크 Moving Walk >

2016. 1. 15. – 2016. 1. 30.

 

익숙한 풍경 속 끊임없이 회전하는 무빙 워크의 컨베이어 벨트 위로 익명의 인물이 걸음을 반복한다. 환승 역사의 긴 환승통로 내에 주로 설치되어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무빙 워크는 공석민 작가에게 있어 인간을 조건지우는 세계의 제반조건에 대한 메타포이다. 더 나은 곳을 향해 외국으로 향했으나 세계가 작동하는 방식은 변함없음을 목격한 작가 본인의 개인적인 배경으로 미루어 보아 목적지에 가기 위해 다른 노선이나 탈 것으로 갈아타는 환승은 크게 의미 없을 뿐더러 이를 가속화하는 무빙 워크는 오히려 ‘멀미’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무빙 워크의 일정한 속도는 인간의 산물이지만 표준화의 이름 아래 끊임없이 인간의 행동을 조건지우고 이를 수용하지 못하는 존재를 위협한다. 이에 작가는 무빙 워크의 방향에 역행하도록 걷는 행위를 통해 정지된 순간을 반복함으로써 환승이라는 목적을 떠나 자기의식적 행위 자체에 집중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작품의 제목인 무빙 워크라는 단어 자체에는 무빙(moving)과 워크(walk)라는 행위가 내포되어 있다. 전시에 포함된 두 영상 작품은 반복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인파 사이에서 무릎을 굽히고 엉금엉금 앉음 걸음을 걷는 작가의 모습은 이질적이다. 공적 영역으로 나온 작가가 반복하고 있는 행위들은 그 상대적인 속도의 차이와 행위 자체의 무목적성과 무의미함으로 인해 오히려 타인이 부재하는 사적 영역에 고립된 것처럼 보인다. 이는 역설적으로 타인을 소외시키는 듯한 효과를 가지는데 이와 같은 자기의식적 행위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보편적 인간이 될 것을 요구하는 압력에 대한 개인으로서의 방어기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목적과 의미가 없는 행위의 반복은 존재에 대한 존재 외부로부터의 가치판단을 유보시킨다. 공석민 작가는 표준화된 인간으로 행위하도록 만들어진 세계의 제반조건이 가지는 보편성이 문제가 되는 지점을 무의미한 행위를 통해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보편적인 인간의 조건이 요구될 때 거절과 호응의 경계에서 스스로가 취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한 단상인 동시에 질문이기도 하다. 이는 ‘무엇으로 존재할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이 결국 밟히고 쓸려 사라져버릴 분필 자욱 같은 것일지라도.

글: 임다운